2023년 겨울호

58 계간 포도 2023년 겨울호 한 잎 한 잎, 비탈밭에서 단풍 깻잎을 딴다. 투명한 햇살 아래 두 친구와 나누는 두런두런 이야기가 좋다. 유유자적 가을을 즐기는 여유, 이 얼마 만의 호사인가. 어언 40년을 동동거리며 살아온 농사꾼 세월이었다. 장정도 없이 짓는 복숭 아 농사에 점점 사나워지는 날씨가 나를 긴장 속에 살게 했다. 근년 들어 날 씨는 더 춥고 더 뜨거워지며 극한으로 치닫는다. 느닷없는 돌풍이나 폭우도 잦 다. 폭풍우가 훑고 간 뒤의 과수원은 손볼 일이 많다. 이런 일은 바로 수습하 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수 있다. 그런 낭패를 겪지 않 으려고 밭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지어온 농사인데 올해 손을 놓아버렸다. 유월 초순, 사흘간이나 줄기차게 내린 폭우가 그친 날 저녁 무렵이었다. 지 반이 약해진 건 알았지만 비가 오래 내렸기 때문에 소독을 늦출 수 없었다. 소독약을 가득 채운 기계를 끌고 세 이랑째 소독하다가 일이 났다. 밭머리를 돌다가 미끄러져 오른쪽 뒷바퀴가 바깥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날은 어두워지는 데 1톤에 가까운 약물을 실은 소독차가 기우뚱 바깥으로 기운 상태였다. 밸브 를 열어 약물을 빼내 무게부터 줄였다. 딸과 둘이 애쓰는 사이 날이 어두워지 고 말았다. 사위가 급하게 퇴근했다. 아아, 모터 소리도 요란하게 운반차를 끌고 위용을 드러내는 장정을 보는데 이제 되었구나 싶었다. 딸은 핸드폰 불빛을 비추고, 사위와 나는 굵은 바로 운반차와 소독차를 연결했다. 한 번에 꺼내지 못하면 기계가 뒤로 밀릴 수도 있었다. 팽팽하게 긴장감이 흘렀다. 딸은 운반차의 운 산길을 내려오며 이 수 안 이달의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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