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호

이달의 추천글 / 산길을 내려오며 59 전대를 잡고, 나는 소독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사위는 뒤에서 소독차를 밀면서 지휘를 맡았다. 사위의 우렁찬 구령에 맞춰 시동을 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 다. -부릉부릉 부르릉…. 기계는 몇 번의 진저리만 칠 뿐 헛바퀴를 돌려댔다. 빠진 바퀴의 앞쪽을 더 파고 미끄럼방지를 위해 돌을 넣었다. 다시 사위의 신 호에 따라 힘주어 오른발을 밟았다. –부르르르르릉, 굉음을 내며 소독차가 찐 득한 흙을 떨치고 안전지대로 쓰윽 올라왔다. 시동을 끄고 긴장이 풀린 나는 그만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남들은 나를 여장부로 보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새가슴이다. 그날부터 딸이 어미의 농사 은퇴를 주장했다. 지금까지 사고 없이 농사지었으 니 얼마나 다행인가, 엄마 나이에 사고 한번 나면 삶이 엉망 되어버린다 등 등…. 다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었는데 수십 년 지어온 농 사를 단박에 내려놓고 편히 살라니.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밤잠을 설치 고, 이른 새벽 과수원을 배회하며 풀잎에 맺힌 이슬에 바짓단을 적시고는 했다. 지난 세월, 극도의 고통 속에 있는 나를 살게 한 것이 복숭아나무였다. 나무 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제 할 일 다하며 묵묵히 나를 위로했다. 피붙이 처럼 흥분하지도 않고, 과한 위로와 단정적인 말로 내 자존감을 훼손하지도 않 았다. 혹한과 가뭄, 장마 등등,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힘껏 살아냄으로써 ‘삶이란 이런 거야.’ 하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 먼 길, 외로웠던 나와 동행하며 힘이 되어준 말 없는 친구. 그 진중한 친구와 작별할 때가 왔단 말 인가. 어느새 농사를 놓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니. 그런 생각으로 열 번도 넘게 번복한 끝에 은퇴를 결정했다. 한동안은 이상했다. 날만 밝으면 늘 나와 함께하던 나무들이 어느새 새 주 인과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정말 잘 짓는 청년이 우리 과수원의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간혹 힘에 겨운 일을 만나면 망설이다 포기하고는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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